뭐랄까 손가락을 잘못놀려 훅~ 지워졌네요..ㅠㅠ
내용인 즉슨, 자청해서 하고 물먹은 샘플...+ 홀리를 향한 마음을 담아 번역해본 글인지라...
이웃분들과 나누고 싶다는 것이었습죠.
■래이 브래드버리 단편선, 태양의 황금 사과 中
남쪽에 사는 착한 마녀 글린다의 딸, 네바에게 사랑을 담아 이 글을 바치노니···
그리하여 순간과 영원이 다할 때까지 따리라. 태양의 금사과, 달의 은사과를.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안개 고동
육지에서 한참을 떨어진 차가운 물 한 가운데에서 우리는 매일 밤, 안개가 찾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안개가 찾아오면 우리는 놋쇠로 된 기기에 기름칠을 하고, 등대 안에 있는 안개등에 불을 밝혔다. 회색빛 하늘 위에 뜬 새가 된 기분으로, 맥던과 나는 어두운 밤바다를 항해하는 외로운 배들을 향해 붉었다 희어지고 다시 붉어졌다 희어지는 조명을 내리 비췄다. 만에 하나 배들이 불빛을 보지 못하는 경우를 대비하여 우리에게는 소리가 있었다. 안개가 만들어낸 희뿌연 장막을 뒤흔들어 혼비백산한 갈매기 떼를 카드 패처럼 흩트려놓은 다음, 성난 파도와 물보라를 불러일으킬 안개 고동의 깊고 우렁찬 외침 말이다.
“적적한 삶이긴 하지만, 익숙해질 때도 되었지. 그렇지 않은가?”맥던이 물었다.
“그러게나 말일세. 그나마 자네가 말이라도 잘하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어.”
“내일은 자네가 육지로 올라갈 차례구만.”미소를 지으며 맥던이 말했다.
“아가씨들이랑 춤도 추고, 술도 좀 마시고 말이야.”
“이보게, 맥던, 자네는 내가 육지에 올라가 있는 동안 무슨 생각을 하나?”
“바다의 신비랄까.”담배 파이프에 불을 붙이던 맥던이 대꾸했다. 어느 쌀쌀한 11월 저녁 일곱 시 십오 분 경의 일이었다. 난방은 켜져 있었고, 조명은 이백도 반경으로 방향을 바꿔가며 회전하고, 등대 상단부에서는 안개 고동이 반복적으로 윙윙대며 울어대고 있었다. 반경 160킬로미터 이내로 인적도 드문 해안가에는 차량의 소통도 드문 한줄기 도로만이 쓸쓸히 바다를 향해 이어져있었으며, 도로가 끝나는 지점으로부터 차가운 물 밖으로 다시 3킬로미터쯤 나아가서야 선박의 왕래도 찾아보기 드문 우리가 머문 암초가 솟아있었다.
“바다의 신비라.” 깊은 생각에 사로잡히기라도 한 듯, 맥던이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세상에서 가장 큰 눈송이가 있다면 그건 바로 바다일걸세. 바다는 천의 얼굴을 지녔지. 똑같은 모습을 지닌 바다란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아. 이상한 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몇 해 전 어느 날 밤 홀로 이 곳을 지키고 있던 때 바다 속의 모든 물고기 떼가 한꺼번에 저 위로 모습을 드러낸 적이 있었네. 물고기들은 마치 무언가의 조종을 받기라도 한 듯이 헤엄쳐 들어와 만으로 모여들었지. 물고기들을 향해 비치는 등대의 붉었다 희어지고 다시 붉었다 희어지기를 반복하는 빛 가운데에서 전해오는 어떠한 떨림과 기운 탓에 나는 물고기들의 기괴한 눈을 바라보게 되었지. 물고기들을 바라본 순간,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네. 한 밤중이 될 때까지 그곳에서 움직이고 있던 물고기 떼의 모습은 흡사 거대한 공작새의 꼬리와도 같았기 때문이라네. 그리고 그 많은 물고기 떼는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네. 수백만 마리에 달하던 그 많은 물고기 떼들이 말이야. 나는 어쩌면 물고기들이 등대에 대한 일종의 경의를 표하기 위해 그토록 먼 거리를 헤엄쳐온 것이 아닌가 한다네. 이상한 소리로 들릴 지도 모르지만, 어디 한번 생각해보게. 물 위로 20미터도 넘게 솟아올라 흡사 천상의 존재가 보낸 듯한 불빛을 쏟아내며 야수와 같은 소리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는 이 등대가 과연 물고기들의 눈에 어떻게 비춰졌을 지 말이네. 물고기 떼는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았네만, 자네라면 혹시 그 물고기들이 등대를 알현하러 찾아 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는 않겠냐는 말일세.”
나는 온 몸에 소름이 돋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무와 공허의 세계를 향하여 기다랗게 뻗어있는 바다의 회색 벌판을 바라보았다.
“아, 만조로군.”맥던은 깜빡이는 담배 파이프를 신경질적으로 털어 껐다. 맥던은 온 종일 신경이 곤두선 듯 보였으나, 이유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우리가 가진 기술력이나 소위 잠수함이라는 것들을 가지고서 해저에 가라앉아버린 땅에 발을 딛기까지는 만세기가 넘는 세월이 걸릴 지도 모르네. 전설 속 왕국 말이야. 그리고 그렇다면 그건 정말 큰 일이 아닐 수 없네. 생각해보게. 저 아래 세상은 아직 기원전 30만 년 전에 머물러있는지도 몰라. 우리가 전쟁에 빠져 서로를 죽이고 살리느라 혈안이 되어 있는 사이에 저들은 해저 20킬로 밑에서 행성 고리에서 만큼이나 긴 혹한기를 견뎌내고 있는지도 모른단 말일세.”
“구대륙 말이로군.”
“이리와 보게. 자네에게 들려주려고 아껴둔 특별한 이야기가 있으니 말일세.”
맥던과 나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천천히 80개의 층계를 올랐다. 꼭대기에 다다르자, 맥던은 유리창에 아무 것도 반사되는 것이 없도록 실내등을 껐다. 등대의 조명은 기름칠한 소켓 안에서 윙윙대며 부드럽게 회전하고 있었으며, 안개 고동은 15초마다 한 번씩 규칙적으로 울어대고 있었다.
“짐승 같은 소릴세, 그렇지 않은가?”자신의 표현에 흡족해하기라도 하는 양 고개를 끄덕이며 맥던이 말을 이었다.
“밤새 외로이 울부짖는 한 마리 거대한 야수의 울음소리 말일세. 깊고 어두운 심연을 향한 백억 년간의 외침이 끝나는 바로 이곳에서 말일세. 내가. 내가 여기에, 내가 여기에 있다, 그러면 심연이 답해올 걸세. 그렇지. 그렇고 말고. 존, 자네가 여기 온지도 벌써 3개월이 다 되어가는군. 그러니 이제 자네에게도 이야기해두는 편이 낫겠어. 매년 이맘때쯤,”
안개 속 어둠을 세심히 살피던 맥던이 말을 이었다.
“등대를 찾아오는 그것에 대해서 말일세.”
“아까 말한 물고기 떼들 말인가?”
“아닐세. 아니라네. 내가 자네에게 이 이야기를 털어놓기를 미룬 건 자네가 나를 미치광이로 여길까봐 여서 이었다네. 그렇지만 미룰 수 있는 것도 오늘밤이 마지막이지 싶군. 작년 달력에 표시해둔 날짜가 맞는다면, 오늘 밤이 바로 녀석이 찾아오는 그 날 밤일 테니 말일세. 길게 설명하지는 않기로 하지. 직접 보면 알 테니 말이야. 그냥 거기 앉아있기만 하면 되네. 그리고 만약 그러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내일 당장 짐을 싸서 항구로 가 세워둔 차를 몰고 내륙의 소도시에서 정착하여 매일 밤, 불을 켠 채 잠들어야겠다고 한들, 나는 자네에게 어떠한 원망과 질타도 하지 않을 걸세.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도 올해로 벌써 세 해째인데 이 일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해줄 사람이라고는 자네가 유일하니 말일세. 그럼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 어디 한번 지켜보기로 하세.”
몇 차례 소곤거림만이 오가는 채, 삼십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기다리는 일도 지루해오기 시작할 때 즈음, 맥던은 자신의 생각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맥던은 안개 고동에 관한 아주 특별한 이론을 가지고 있었다.
“옛날 아주 먼 옛날, 춥고 어두운 해변을 거닐던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네.
‘바다 저 편을 항해하고 있는 배들에게 경고를 보내려면 소리가 필요해. 소리를 하나 만들어야겠어. 이 세상에 존재해온 모든 시간과 안개와 같은 소리, 밤새 홀로 잠든 이 곁에 빈 침상 같은 소리, 문을 열면 텅 빈 집과 같은 소리, 잎새가 하나도 남지 않은 가을철 나목 같은 소리, 남으로 길 떠나는 철새 울음 같은 소리, 초겨울 북풍 같은 소리, 춥고 황량한 해변의 바닷물 같은 소리. 홀로 들려와도 아무도 잊지 못할, 그리하여 멀리 떨어진 인가에서 그 소리를 듣는 이라면 누구나 영혼으로 흐느끼며, 벽난로의 온기를 더욱 더 따스하게 느끼어, 바깥으로 한 발짝도 내딛지 않고 집안에서만 머무르고 싶게 하는 소리를 말이야. 소리와 소리를 만들어낼 장치를 만들어야겠어. 사람들은 그 장치를 안개 고동이라 부르고, 소리를 듣는 이들은 누구나 인생의 덧없음과 영원한 슬픔에 대해 깨닫게 될 게야.’라고 말일세.”
안개 고동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이야기는 물론 내가 지어낸 이야기일세.” 맥던이 조용히 말을 이었다.
“매년 녀석이 등대를 찾아오는 까닭을 설명하기 위해서 말이야. 녀석을 끌어들이는 것은 바로 안개 고동이라네. 내 생각에 말일세. 녀석은...”
“그렇지만.”
“쉿!”
“저기!”
내 말을 중단시키며, 맥던이 깊고 어두운 심연을 향해 고갯짓했다.
등대를 향해 뭔가 헤엄쳐오고 있었다.
이미 이야기했던 바와 같이, 그날 밤은 매우 쌀쌀한 편이어서, 싸늘하게 식어버린 등대에서 내리 비추는 조명만이 오가거나, 얼기설기 얽어져 시야를 가린 밤안개 사이로 안개 고동만이 울어대고 있을 뿐이었다.
저 멀리에서부터 정확하지는 않지만, 깊고 어두운 바다가 평평하고 고요한 흙빛 밤의 대지를 향하여 움직이고 있었으며, 주위에 있던 사람이라고는 맥던과 나, 등대 위의 우리 두 사람이 전부였다. 이윽고 먼 바다에서부터 잔물결이 일기 시작하더니, 성난 파도가 엄청난 포말을 일으키며, 차가운 수면 위로 머리 하나가 불쑥 솟아올랐다. 거대한 눈을 가진 엄청나게 크고 검은 빛깔의 머리가 말이다. 그 다음에는 몸이 아니라, 목이, 그리고 또 목, 목이 가면 갈수록 점 점 더 길어지는 목이 나타났다! 검고 호리호리한 목 위에 달린 머리는 무려 수면 위 12미터까지 솟아올랐다. 그리고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검은 산호초와 조개, 바다가재 등으로 이루어진 작은 섬 같은 몸통이 해저로부터 그 모습을 드러냈다. 순식간에 눈앞을 스쳐지나간 꼬리를 보고서야 나는 비로소 괴물의 머리에서부터 꼬리까지가 총 27미터에서 30여 미터에 달한다는 사실을 가늠할 수 있었다. 무슨 말을 하기는 한 것 같은데 도무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해낼 수가 없었다.
“정신 차려, 이 친구야. 정신 차리라고.”맥던이 소리쳤다.
“말도 안돼!”나는 이렇게 소리쳤다.
“존, 아니야, 말이 안 되는 건 바로 우릴세. 저 녀석은 천만 년 전이나 마찬가지로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 변한 건 하나도 없단 말일세. 변한 게 있다면 그건 바로 이 땅과 우릴세. 말도 안 되는 건 우리야, 바로 우리라고!”
괴물은 음험하기 짝이 없는 위용을 띠고 저 멀리 차가운 물속을 홀로 서서히 유영하고 있었다. 오락가락하는 안개가 녀석의 모습을 완전히 감추어놓았다 드러내기를 반복했다. 괴물의 한쪽 눈이 뿜어내는 시선은, 높은 곳에서 태곳적 암호로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태양의 반과 같이, 이쪽을 응시하며 우리가 보내는 붉었다 희어지고, 또 다시 붉었다 희어지기를 반복하는 조명을 고스란히 반사해내고 있었다. 녀석은 자신이 헤집으며 유영하고 있는 안개만큼이나 고요했다.
“저건 공룡이 아닌가!”난간을 붙잡고 쪼그려 앉은 내가 외쳤다.
“맞아, 공룡의 일종이지.”
“그렇지만 공룡은 이미 모두 멸종해버렸잖은가!”
“아닐세, 그저 깊고 어두운 심연 속으로 숨어버렸을 뿐이라네. 저 깊은 심연 중 가장 깊은 심연으로 말일세. 이보게, 존. 심연이란 말일세. 지금 이 순간 정말로 많은 것을 시사해주는 말이지 않은가. 말 한 마디에 이 세상 모든 냉기와 어둠과 심오함이 담겨있다니 말일세.”
“이제 어쩐다지?”
“어쩌냐고? 일이 있으니, 떠날 수야 없질 않은가. 게다가 뭍으로 향하는 배 안에 있는 편보다는 이편이 훨씬 더 안전하니 말일세. 녀석은 항공모함만큼이나 날쌔고 거대하다네.”
“그렇지만 왜 하필 여기란 말인가?”
질문을 던지자마자, 나는 즉시 질문에 대한 해답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안개 고동이 울고, 괴물이 답해왔기 때문이다.
수백만 년의 세월을 견뎌낸 물과 안개 너머로 한줄기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너무나 외롭고 괴로운, 듣는 것만으로도 온 몸과 마음을 뒤흔들어놓기에 충분한 울음이 말이다. 괴물은 등대를 향해 포효해왔으며, 안개 고동이 즉시 이를 되받아쳤다. 다시 괴물, 다시 안개 고동이 울어댔다. 괴물은 엄청난 크기의 이빨이 촘촘히 박힌 거대한 입을 열었고, 그 입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는 바로 안개 고동의 그것과 같았다. 외롭고 광막하며, 머나 먼, 외로움의 소리,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바다, 차가운 밤, 이질감의 소리. 바로 그러했다.
“이제 알겠나, 왜 하필 여기인지 말일세.” 조용한 목소리로 맥던이 말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보게, 존. 저기 드러누운 저 불쌍한 녀석은 이곳에서부터 수만리 떨어진 해저에서부터 이때가 오기만을 기다려왔는지도 모르네. 백만 살은 족히 넘었는지도 모르지. 바로 저 녀석이 말일세. 백만 년 동안의 기다림이라니, 생각 좀 해보게. 자네라면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기다릴 수 있겠나? 저 녀석은 어쩌면 자신의 종족 중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후손인지도 몰라. 나는 왠지 그럴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군. 어쨌거나, 육지인들이 이곳에 등대를 지은 지도 벌써 오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네. 그런 다음 안개 고동을 설치하고 녀석이 숨어 잠든 그 곳을 향해 불고 또 분단 말일세. 자신과 똑같은 수천이 넘는 동족이 살아가던 바다를 추억하며 잠든 녀석을 향해 말일세. 그렇지만 녀석은 혼자일 뿐이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 피해 숨어야 할 세상에서 철저히 혼자란 말일세. 그런 녀석에게 안개 고동의 소리가 들렸다, 말았다 하는 걸세. 녀석은 필시 진흙으로 된 심연의 바닥을 휘저으며 깨어나, 커다란 카메라 렌즈 같은 눈을 열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는지도 몰라. 온 바다의 무게를 어깨에 짊어진 채 말일세. 수만리 떨어진 바다 저 멀리에서 들려오는 희미하지만 익숙한 안개 고동의 소리를 듣고는 뱃속에서 일어난 불길로 배를 팽창시키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떠올랐는지도 몰라. 넘실대는 해파리 떼 위를 헤엄쳐가는 대구나 잡어 떼로 배를 채웠는지도 모르지. 가을이 되어 안개가 시작되는 9월, 안개가 짙어지고 안개고동이 여전히 자신을 부르는 10월을 지나, 마침내 11월 말이 되기까지 녀석은 매일같이 기압을 일정하게 유지하며 조금씩 더 높이 떠올라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건지도 몰라. 서둘러서는 안 된다네. 단번에 떠올랐다가는 뻥 하고 터져버릴지도 모르니 말일세. 그래서 수면에 다다르기까지는 무려 석 달이라는 기간이 걸린 것일 테고, 차가운 물속을 헤엄쳐 등대에 다다르기까지 또 다시 며칠이라는 시간이 걸린 것일 테지. 이 모든 과정을 견디고서야 비로소 저기에 다다르게 된 것이라네. 이토록 깊은 밤, 바로 저기 말일세. 존. 신이 창조한 피조물 중 가장 위대한 녀석이 말이야. 그리고 여기에는 녀석을 부르는 등대가 있네. 수면 위로 솟구친 녀석의 목과 같이 긴 목을 하고, 녀석의 몸통과 같은 몸통을 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녀석의 목소리와 같은 목소리를 하고 녀석을 부르는 등대가 말일세. 이제 이해가 가나. 존, 이해가 가냐는 말일세.”
안개 고동이 울고, 괴물이 답해왔다.
그제야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절대로 돌아오지 않을 누군가를 기다리는 백만 년 동안의 고독한 기다림. 하늘 위에서 익룡들이 사라지고, 땅 위의 늪지는 메말라가며, 나무늘보와 검치 호랑이들이 생을 마감하여 타르 호수에 가라앉고, 흰 개미떼와 같은 인간들이 산기슭을 오르는 동안, 해저의 밑바닥에서 홀로 지새웠을 수백만 년의 세월들, 그곳에서 지새웠을 광기의 세월들이 말이다.
안개 고동이 울었다.
“작년에도 말일세.” 맥던이 말을 이었다. “녀석은 밤새 둥글게 원을 그리며 헤엄쳤다네. 마치 겁먹기라도 한 듯 가까이 다가오지도 않으면서 말일세. 내 생각에는 두려워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네. 어쩌면 화가 났는지도 모르지. 그토록 머나먼 길을 헤엄쳐 오느라 말일세. 다음 날 안개가 모두 걷히고 화창하게 날이 개이자, 녀석은 열기와 침묵을 피해 헤엄쳐가서는 두 번 다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네. 내 생각이 맞다면, 일 년 내내 생각에 잠겨있었던 게 아닌가 하네. 이리 저리 머리를 굴리면서 말일세.”
괴물과의 거리는 이제 채 90미터도 남아있지 않았다. 괴물과 안개 고동은 서로를 향해 끊임없이 울어댔다. 등대가 쏘아내는 불빛에 반사된 괴물의 눈빛이 불처럼 타올랐다가 얼음처럼 차갑게 식기를 반복했다.
“팔자려니 해야지.”맥던이 말했다.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누군가를 기다리는 이도 있기 마련이고, 영원히 보답 받지 못할 사랑을 하는 이도 있기 마련이지. 그리고 그런 식으로 인고의 세월을 견디다보면, 상대가 무엇이건 간에,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부숴버리고 싶어지는 거야.”
괴물이 등대를 향해 돌진해오고 있었다.
안개 고동이 울었다.
“어디 무슨 일이 벌어지나 한번 두고 보기로 하지.” 맥던은 말을 마치기 무섭게 안개 고동의 전원을 내려버렸다.
침묵의 순간이 이어지고, 심장 뛰는 소리나 기름칠한 조명등이 천천히 돌아가는 소리만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
괴물은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 멈춰선 채 거대한 조명등 같은 눈을 껌뻑였다. 벌어진 입 사이로 화산이 폭발하는 듯한 울림이 전해져왔다. 녀석은 마치 이제는 안개 너머로 사라져버린 소리를 찾기라도 하는 양 머리를 이리 움찔 저리 움찔대고 있었다. 등대 쪽을 응시하고 있던 녀석은 다시 한 번 우르르 하는 괴성을 질러댔다. 불빛을 알아챈 녀석이 온 몸에서 물을 쏟아내며 뒷다리로 일어나 등대를 향해 돌진해오기 시작했다. 녀석의 눈은 고통과 분노로 가득했다.
“이봐!” 나는 맥던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전원을 켜게, 어서!”
맥던은 어둠 속을 더듬어 황급히 안개 고동의 전원을 올렸다. 하지만 전원을 켰음에도 불구하고 괴물은 여전히 몸을 세운 채 였다.
등대를 할퀴는 괴물의 그림자에서 나는 거대한 손톱과 손가락 사이사이로 거미줄처럼 늘어진 비늘 같은 갈퀴를 목격했다. 분노로 가득 찬 괴물의 오른 쪽 눈이 떨어지면 풍덩 빠져버릴 가마솥처럼, 우리의 코앞에서 불타오르며 빛을 발하고 있었다. 괴성이 이어졌고 등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내 팔을 거머쥔 맥던이 황급히 외쳤다. “아래로!”
기우뚱하고 흔들리던 등대는 마침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안개 고동과 괴물은 동시에 괴성을 지르며 포효하고 있었다.“서둘러!”계단에서 발이 걸려 넘어진 우리는 등대가 머리 위로 무너져 내리기 직전에야 가까스로 바닥에 발을 딛고 계단 아래로 난 작은 공간 안에 몸을 숨길 수 있었다. 등대 안은 비처럼 떨어지는 수천 개의 돌들이 만들어내는 진동과 소음으로 가득했다. 안개 고동의 소리는 불현듯 멈춰버렸고, 등대는 자신을 덮친 괴물과 함께 쓰려져버렸다. 등대는 끝내 산산조각이 나버리고 말았으며 맥던과 나, 우리 두 사람은 우리만의 세상이 폭발해버리는 동안 무릎을 끓고 서로를 끌어안고 있는 수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제야 모든 사태가 마무리되었고, 남은 것은 칠흑 같은 어둠과 부서진 석재 위를 때리는 차가운 바닷물의 소리뿐이었다. 잠시 뒤 바닷물의 소리 뒤로 어렴풋이 또 다른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들리나.” 맥던이 속삭였다.“저 소리 말이야.”
숨을 죽인 채 잠깐을 기다리자, 이내 맥던이 말한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거대한 청소기가 공기를 흡입하는 듯 한 소리와 연이은 탄식, 괴물의 외로움과 당혹스러움이 우리의 몸 위를 덮쳤고, 우리가 몸을 피한 공간으로부터 불과 돌 하나 만큼의 두께 밖에 떨어져있지 않은 괴물의 몸에서 풍겨오는 역겨운 냄새가 온 대기 중을 채웠다. 녀석은 숨을 헐떡이며 울부짖고 있었다. 등대가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불빛도 마찬가지였다. 백만 년 만에 말을 걸어온 무언가가 사라져버린 셈이었다. 괴물은 입을 열고 엄청난 괴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안개 고동의 소리, 바로 그 소리를 말이다. 등대가 비추는 불빛을 보지 못하고, 아무 것도 목격하지 못한 채 먼 바다를 헤매던 배가 있었다면 그날 밤 그 곳을 지나며 필시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외로운 소리로군. 안개 고동의 소리야. 됐어. 이제 만을 지났으니 말이야.
날이 샐 때까지 똑같은 소리가 반복되었다.
다음날 오후, 무너진 돌계단 아래 빈 공간에 갖힌 우리를 구조하러 구조대가 도착했을 때, 태양은 황금빛으로 뜨겁게 작열하고 있었다.
“저절로 무너진 거요. 그게 다라오.”
“파도가 몇 번 덮치니 바로 산산조각 나버리더군.”
맥던은 진지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 다음 내 팔을 쥔 손에 힘을 꽉 줬다.
이상할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바다는 고요하고 하늘은 푸르렀으며, 눈길을 끌만한 것이라고는 그저 쓰러진 등대에서 나온 석재들과 해변의 암초들로부터 떨어져 나온 것으로 여겨지는 해조류의 냄새를 물씬 풍기는 초록색 물체뿐이었다. 냄새를 맡은 파리 떼가 윙윙거리며 초록색 물체의 주위를 맴돌았다. 바다는 해변 위의 모든 것을 하나도 남김없이 쓸어가 버렸다.
다음 해, 사람들은 새로운 등대를 건축하기 시작하였으나 그때쯤 나는 이미 내륙의 소도시에 정착하여 비록 작기는 하지만 튼튼한, 가을 밤 황금빛 불빛이 새어나오며 단단히 문단속을 마친, 집에서 아내와 함께 삶을 꾸려가고 있었다.
새로운 등대는 책임자인 맥던의 설계에 따라, 철근과 강화 콘크리트로 지어졌다.
“만에 하나,”라는 것이 맥던의 설명이었다.
새 등대가 완공된 것은 11월에 다다라서 였다. 나는 어느 늦은 가을 밤 홀로 새로 지은 등대 근처에 차를 세운 채, 회색 물결 너머로 보이는 등대와 새로운 안개 고동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 적이 있다. 한번, 두 번, 세 번, 네 번, 저 너머에서 홀로 외로이 일분이라는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괴물은 어찌 되었냐고?
이후로 한 번도 마주치지 못했다.
“가버렸다네.”
“저 깊고 어두운 심연으로 돌아가 버렸지. 적어도 이 세상 것을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 정도는 얻었겠지. 다음 백만 년을 기다리기 위해 저 깊고 어두운 심연으로 돌아가 버린 게지. 불쌍한 녀석 같으니라고!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또 기다리겠지. 이런 끔찍하기 짝이 없는 세상에 사람들이 오고 또 가는 동안 저 먼 곳에서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니 말이야.”
나는 차 안에 앉아 귀를 기울였다. 등대나 등대가 서있는 외로운 만은 보이지 않았다. 안개 고동의 외침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안개 고동의 외로운 외침, 그리고 또 외침. 괴물의 외침과 같은 외침이 말이다. 나는 무어라 답해줄 수 있기를 바라며, 그저 가만히 그곳에 앉아 있을 따름이었다.